▲ 진안 장승초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대문열기'놀이를 하고 있다.

전주에서 진안으로 가기 위해 넘어야 하는 모래재 주변의 작은 마을. 50여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에 장승초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작고 낡은 건물을 둔 학교의 운동장에 10명도 채 안되는 학생이 선생님과 운동장에서 뛰논다. 아이들은 “문지기 문지기 문 열어라~”를 노래하며 ‘대문열기’ 놀이에 한창이다. 선생님은 놀이를 제안하고 학생들은 서로 방법을 찾으며 차례를 정한다. 때로는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하기도 한다. 그리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함박웃음속에 놀이에 흠뻑 빠져있다.

5,6학년이 함께 배우는 국사수업시간. 선생님 한 명은 앞에서 가르치고 다른 한 명은 학생들 옆에서 도와준다. 대형 모니터를 통해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에 대한 내용이 낱말맞추기 퀴즈로 나온다. 5학년은 상대적으로 동생이지만 수업시간만큼은 꿀리지 않는다. 손을 들어 질문하거나 답을 맞추는 학생수도 더 많다. 오히려 더 명랑하다. 문제에 대한 답변이 틀려도 개의치 않는다. 선생님이 ‘발해가 왜 우리민족이라 할 수 있는지 서술하라’는 지시에 형과 동생들은 서로 물어보고 상의하며 답을 찾아간다. 마치 ‘협력학습’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하다.


열악한 환경 다시 서는 학교

장승초의 현재 학생수는 57명으로 유치원을 포함하면 68명이다. 교직원은 14명으로 당초 3학급이 6학급으로 늘면서 교사 4명이 전입했다. 60년 넘는 역사를 갖고 있지만 폐교대상학교로 지목되면서 시설이 노후한 상태다. 교실이 부족하고 계단은 가파르다. 벽면의 페인트는 곳곳이 헐어져가고 있다. 외부에 있는 화장실도 재래식인데다 변기수도 부족하다.

한상윤 교감은 “겨울에는 밖에 있는 화장실이 일찍 그늘져 춥다. 그러다보니 용변보는 데도 아주 불편하다. 수량도 적어 아이들과 함께 쓰는데 여간...”

학교급식도 문제다. 급식인원이 80여명으로 증가했으나 인근학교에서 배달, 자체급식이 필요한 상황이다.

	▲ 5, 6학년이 함께 수업하는 팀티칭시간에 학생들이 선생님의 말씀에 집중하고 있다.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몇몇 교사들이 의기투합했다. 작은 학교를 살려보자는 뜻에서다. 이를 위해 매주 한 번씩 회의를 갖는다.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 머리를 맞대는 것이다. 장기적인 구상을 위해 자체적으로 학교의 현주소를 분석했다. 학교의 강점으로 뜻 맞는 교사가 많고 체험학습 기회가 풍부하다는 점이다. 민주적인 회의문화와 개개인의 열정과 헌신성도 높이 꼽았다. 반면 8년간 방치된 낙후된 시설, 학습기자재 부족, 학생의 보건이나 급식이 미흡한 점을 약점으로 지적했다. 그리고 주변 학부모들의 열의, 행정직관의 적극적 지원, 학교이미지 향상, 자연환경 등은 향후 새롭게 거듭날 기회의 요소라고 보고 있다.

이같은 분석과 함께 학교는 ‘스스로 서서 서로 살리자’는 목표를 세웠다. 스스로 선다는 건 학생 개개인의 능력, 부족한 점, 필요한 점, 원하는 점 등을 헤아리자는 것이다. 서로 살린다는 건 주변을 둘러보고 도와주며 보살피는데 마음을 쏟는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학교는 독서와 글쓰기에 주력한다. 특히 죽어있는 독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독서를 지향한다. 이를 위해 체험을 강화하고 있다. 김매기나 추수체험을 통해 벼의 한 살이를 이해하고, 감자나 옥수수 등 식물가꾸기로 자연생태의 이해를 돕는다. 또 진안둘레길을 걸으며 지역을 이해하고 인근 용마산에 오르거나 냇가에서 고기잡기 등 생활교육으로 사고력과 논리력을 향상시키고자 한다.

	▲ 학생과 교사, 학부모가 교환하는 나눔장

작은 학교 살리려는 집념

급격한 이농현상과 함께 장승초는 이미 8년전부터 폐교대상이었다. 하지만 최근 귀농인구가 새롭게 정착하기 시작하고 혁신학교로 지정되면서 활기를 되찾고 있다.

올해 학생수가 급증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교사와 지역주민의 땀이다. 이 학교를 거쳐간 교장들은 학교를 살리기 위해 교사와 전주 도심을 찾아 설명회와 홍보자료를 배포했다. 하지만 전화문의가 고작이었다. 소식을 들은 몇몇 교사가 의기투합했다. 이른바 ‘농촌의 작은 학교를 살려보자’는 것이다. 지난 해 6월부터 교장, 교사, 지역주민, 동창회, 학부모들이 모두 손을 걷어붙였다. 학교상, 학생상, 교육과정 등을 숙의했다. 그리고 행정기관 협조, 전주 학부모 1:1 설명 등을 가졌다. 특히 농촌에 관심이 많은 학부모를 설득하고 설득했다. 어느 정도 성과가 보일 무렵 지난 해 11월 혁신학교로 지정되면서 탄력을 받았다.

이승수 혁신학교 담당교사는 “지역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은 비교적 쉬웠다. 하지만 농촌으로 오겠다는 학부모가 없다는 게 큰 장벽이었다. 그런데 정글의 법칙과 경쟁구도의 도심교육을 꺼리는 학부모들이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제 시골에서 살며 도시로 출퇴근하는 풍경을 그립다.”고 미래를 그렸다.

	▲ 아이들이 직접 잡은 도룡뇽.

/박규만 기자 pkm@sjbnews.com

	▲ 천춘진 학부모 회장

천회장은 농업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일찍이 일본으로 건너가 농학을 전공, 연구소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8년 전 고향인 진안으로 돌아와 유기농 채소를 기업화하고 있다. 장승초를 졸업한 그의 자녀 4명이 모두 이 학교에 다녀 애정 또한 남다르다.

△ 폐교위기서 부침이 많았다.

모든 인구, 교육이 한 곳에 집중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문을 닫아야 한다는 소식과 함께 교사와 학부모, 주민들이 머리를 짜냈으나 뾰족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 학생 증가에 큰 몫을 했다는데.

사실 도시학부모가 자녀를 시골로 보내는 일이 쉽지 않다. 무한경쟁 교육시스템을 경계하는 사람들의 욕구가 강했다. 게다가 주변에 생협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 역시 죽음의 경쟁보다 함께 하는 공동체적 교육을 추구했다. 이번에 입학한 학생들의 대다수가 그 자녀들이다.

△ 느낌이 남다를텐데

전북도가 인구유출방지 정책을 펴듯, 각 시군도 인구유입정책을 편다. 하지만 쉽지 않다. 반면 시대변화와 그에 따른 교육이 인구유입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이 놀랍다.

△ 학부모의 학교참여는

조심스럽다. 일부 영향력 있는 학부모가 들락거리면 학생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한다. 무슨 일을 해도 존재를 드러내지 말도록 권장한다. 학부들끼리 '도서도우미'를 맡는 일을 모색학고 있다.

△ 혁신학교 전망은.

학생수 급증에 따른 일부 비판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교육적으로 적합하지 않다. 개의치 않는다. 지금도 경기도나 전주에서 입학하겠다는 사람이 많다. 현재로서는 정착할 집이 부족하다. 거처를 마련하는 일이 우선과제다. 장기적으로 잘 될 거라 확신한다.

/박규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