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읍 수곡초 학생들이 인라인스케이트 체험시간에 강사의 지도를 받고 있다.

"요즘 ○○가 조금 우울한 것 같지 않아? 뭘 물어봐도 시큰둥하고……“

“제가 어제 점심 먹으러 가는데 ○○가 △△하고 싸우더라고, 그 둘이 싸우는 모습이 자주 보이네~”

“아이들이 요즘 개구리알을 가지고 노는데, 자연을 관찰하는 것은 좋지만 생명 경시 풍조가 있는 것 같아서 어떻게 지도하면 좋을까”

수곡초등학교 교사들은 금요일 오후 3시부터는 만사를 제치고 한자리에 모인다. 아이들과 밀접한 학교 생활에 대한 이야기나 수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다. 자연스럽게 한 아이를 돕기 위한 전교사들이 협력적 해결 방안이 나오고, 더 나은 교육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학교에서 교사들이 협의하는 문화가 당연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교사들이 이러한 자리를 얼마나 갈구하고 마련하기 힘든 지 잘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미 농촌학교의 성공적인 모델로 자리잡고 있는 수곡초에서 이러한 협의시간이 정착된 건 올해 들어서 교사들의 합의에 의해서다.


농촌학교의 표준모델이 되기까지

수곡초는 정읍에서 유일한 벽지학교로서 공모제교장이 근무하는 자율학교이자 혁신학교다. 이 학교가 혁신학교가 되기까지는 1~2년의 과정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갑자기 학교 문화가 바뀌고, 전반적인 시스템까지 바뀌기가 쉽지 않아서다.

수곡초가 혁신학교로 선정되고 농산촌의 학교의 새로운 모델로 자리잡기까지는 약 6년전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복식 3학급에서 6학급으로 성장할 당시 교장과 교감, 교사들이 출발점에 섰다. 학교를 놀이터로 삼아 헌신적으로 임하고, 학생들을 자가용에 태우고 출퇴근하면서 학생수가 증가했다.

한자급수 시험을 위해 한국어문학회 한자급수평가장을 유치시켜 아이들에게 모두 한자자격을 취득하게 하고, 소인수 학급의 장점을 활용해 수시로 체험학습을 실시했다. 이러한 교육이 입소문으로 퍼져 전국단위 학교혁신대회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동진강으로 생태체험학습 나온 정읍 수곡초 학생들이 돌다리를 건너며 즐거워 하고 있다.

교사들의 열정으로 시작된 수곡초의 교육에 큰 전화점이 찾아왔다. 교사의 근무기한이 3년인 벽지학교로서 학교문화를 정착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 하지만 본교 교사가 교장으로 부임하며 새로운 변화가 시작됐다. ‘자연친화적 체험활동과 따뜻한 돌봄의 학교’, '방과후학교', ‘아토피예방교육 시범학교’로 지정된 데 이어 수영, 승마, 겨울 스키캠프 등 체험학습의 기반을 조성했다. 또 산촌유학센터, 친환경유기농급식, 종일돌봄 등을 주도했다.

오경숙 혁신학교 담당교사는 “왜 혁신학교를 하고 싶냐고 물으면 답할 것이다. 신바람나는 교육, 내 수업연구를 통한 보람찬 가르침, 교사전문성의 학생교육에 쏟고 싶다.”며 전북지역의 바람직한 모델을 제시하고 싶다고 말했다.

안팎의 어려움을 딛고

교사들은 혁신학교의 어려움으로 몇 가지를 지적한다. 첫째는 제도적 구속이다. 이 학교에 전입하는 학생을 위장전입이라 하거나, 학군제 운영으로 학생수송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학군 외 지역의 학교통학버스를 운영할 수 없어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학교버스 2대의 운영비를 지불하고 있다.

둘째 지역발전과 교육을 별도로 생각하는 자치단체의 지원 부족이다. 임실이나 진안 등 타시군과 비교할 때 정읍시의 지원은 일천하다는 것이다. 산촌유학센터를 통해 전학 온 학생 중에는 아예 가족 전체가 귀농한 가정이 늘고 있는데도 지자체의 지원은 미미하다는 것이다.

셋째 학부모의 교육 활동 참여가 좀 더 주체적이고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교육이 학부모나 학교 한 쪽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와함께 혁신학교로서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역네트워크가 부족하고 학부모 자치문화도 정착하지 못한 상태다.

이석문 교장은 “학생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아이들이나 학부모가 행복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이를 경계해야 한다. 자만에 빠질 수 있어서다. 조용하면서도 내실있는 교육현장이 되도록 할 것”이라며 서두르지 않고 차근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규만 기자 

	▲ 홍정희 학부모회장

홍회장은 서울에서 회사생활을 하다 교육계에 만연한 경쟁구도를 벗어나고자 새로운 교육환경을 찾았다. 우연히 산촌유학 소문을 접한 뒤 귀농을 감행, 가족 모두 내려왔다. 지금은 농사일에 눈코뜰 새 없이 바쁘다. 자녀 둘이 수곡초를 다닌다.

△ 서울서 내려온 이유는

서울에서는 학교가 끝나고 아이들을 학원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 그래야 하는 회의감이 많았다. 흙과 함께 살고 싶었다. 욕심을 내려놓으면 좋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다.

△ 혁신학교로서 수곡초는 어떤가

수곡초는 혁신학교로 지정되기 전부터 이미 혁신학교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동문들이 지원하는 다른 학교와 달리 이 학교는 교사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아이들 교육에 대한 기본이 탄탄한 것 같다. 그래서 더욱 자연스럽다.

△ 자녀들이 이 학교를 다닌다.

개인적으로 아이가 음악을 좋아한다. 서울에서는 플루트 등 악기를 구입하거나 학원을 다녀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만만찮다. 하지만 여기는 시간적으로나 비용적으로 절약할 수 있다. 학교에서 해결할 수 있어서다. 처음에는 어찌할 줄 잘 모르더니 곧 스스로 공부하고 스스로 논다. 근래들어 아이의 얼굴이 확 달라졌다. 아이의 만족도가 높은 것 같다.

△ 농업종사자가 많아 학부모의 참여가 어려울텐데

시골이라 고연령층이 많다. 또 농번기에는 농삿일을 제쳐두고 학교를 찾기 어렵다. 불가피한 현실이다. 30~50대가 주로 활동한다. 작은 일부터

△ 학부모의 학교 참여 방식은

작년부터 학부모 모임이 활성화됐다. 독서나 축제 등에 참여한다. 학부모 중에도 유능한 재원이 많다. 현재는 6시부터 9시까지 돌봄시간에 참여한다. NIE수업이나 독서지도, 영화감상, 만들기 등을 계획하고 있다.

△ 어려운 점이 있다면

학생들의 분포가 인근 마을, 정읍시, 수도권 등 다양하다. 그러다보니 학부모 사이에 본의 아니게 계파가 형성되는 느낌이 있다. 학부모라는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에 부모들이 공동체로서 하나가 되도록 해야겠다.

△ 학교에 대한 바람은.

선생님들이 워낙 열심히 한다. 퇴근시간도 없이 밤 늦게까지 아이들과 함께 한다. 그래서 특별히 바랄 게 없다. 다만 염려되는 게 있다. 혁신학교로서 일정정도 성과를 내야 한다는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아이들에게 신경을 덜 쓰게 될 지 우려된다. 에너지를 분산시켜서 그동안 해오던 방식으로 했으면 한다.

/박규만 기자